오다 멈춰 선 봄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731
등록일 : 2020-09-01  
파일 :

오다 멈춰 선 봄

                                               정 준 용 ( 전 익도관세법인 관세사)

  

겨우내 얼었던 땅에 새싹이 돋아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움트고 있다. 산하엔 생명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어느새 뒷산 중턱에 매화가 앙증스레 꽃망울을 틔웠지만 예뻐해 줄 길손이 갑자기 끊겼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봄은 왔건만 거꾸로 마음은 얼음덩이다. 인구 일천만 명이 넘는 중국 우한(武漢)시를 통째로 봉쇄하게 만든 코로나19로 불리는 괴물 바이러스가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폭발적으로 터졌다. 거리는 인적이 끊기고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만 바쁘게 오간다. 펜데믹을 막으려는 범국가적인 노력들을 특별 뉴스로 쏟아낸다. 하늘 길도 막혔다. 대구사람에 대한 입국금지가 한국인 전체로 이어졌다.

외출을 삼가고 가급적 집에서 지내라, 생활 속에 거리를 두어라, 집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라, 손을 깨끗이 자주 씻어라 등이 국민적 실천사항이다. 마스크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나이별로 살 수 있는 요일과 수량을 정해놓았다. 약국 문을 열기도 전에 긴 줄을 서야 살 수 있다. 입을 틀어막는 재갈을 굳이 줄을 서가면서 사야하니 마뜩찮기 그지없다. 학교, 교회, 영화관, 공장 등의 문은 닫히고 나라 사이, 사람 사이가 끊긴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이다.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도 챙긴다. 하루 세 끼니 빠짐없이 준비하며 가족 건강 책임지는 주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진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법도 익혔다. 집 바깥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관계 맺기와 더불어의  온기로 산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경계부터 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어깨를 기대야 함에도 2미터 이상 떨어지라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관계가 깨져버렸다. 꼭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말 붙이기가 어렵고,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신세다

마스크에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편이라고 너무 가까이 하지 말고 다른 편이라고 너무 멀리하지 말라는 창조질서 매질인가.  바쁘게 나다니던 인간들과 공장들이 멈추니 대기는 맑아지고 지구는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동안 소비가 미덕이라며 흥청망청 쓰고 마구잡이로 버려 왔다. 모든 생명체를 품고 있는 어머니인 지구가 몸살을 앓고 병들었다. 창궐하는 역병은 지구가 고도의 물질문명에 도취된 인류의 비문명적인 생활습관에 대한 징벌이지 싶다.

코로나19,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미생물의 침투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맥없이 죽어들 간다. 환자는 넘쳐나고 의료진의 손은 모자라 밤을 낮 삼았다. 온 나라에서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들이 의병이 되어 대구에 왔다. 이들이 방역 최전선에서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의 헌신적인 투혼과 희생으로 큰 불을 꺼서 진정세를 보인다. 이번 코로나19 대처를 보면서 의료종사자들이야말로 야구, 축구 등 스포츠 스타에 견줄 바 없는 더 귀중한 값어치를 느끼게 된다. 이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장기간 마스크를 써오면서 지난날 내 언어가 가볍고 소란스러웠음을 깨닫게 된다. 침묵의 가치도 배운다. 손바닥만 한 마스크 한 장에 생명을 내맡기고 살아야 하는 인간 삶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배려이자 매너가 된 세상이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지 싶다. 친구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가슴을 끌어안고 정을 나누던 날이 쉬이 올 수 있을까.갑작스레 곤두박질 친 일상.  비로소 생각없이 흘려보낸 소소한 일상이 은혜요 평화이었음을 온몸으로 배운다.

몹쓸 바이러스는 독하고 질겨서 여름의 초입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 길 바닷길 다 열어 놓고 코로나19와 싸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민초들이 사투를 벌리는 고난극복의 처절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재난의 시기를 지나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숙해지리라. 그리고 끝내 우리는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갈 것이다. 봄꽃 가득한 뜨락에서 꽃향기 즐기며 희망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화사한 봄날을 그린다.